출처: 노동남초등학교 동문회지 창간호 2015
Source text preserved in Korean from the 2015 Nodong Namcho Elementary School Alumni Magazine.
돈다(敦多), 돈담마을
황추산(매봉산)이 동남향으로 뻗으면서 장태봉에서 북동향으로 파생한 한 줄기가 백마등과 인두골(위골·윤두골) 봉우리를 이루고, 깃대봉으로 뻗어가면서 북향으로 파생하여 우뚝 솟아 꿩이 엎드린 형상의 복치혈로 산 아래 우로 뒷골의 산봉우리가 참새미에서 감싸안고, 남서로 백마등과 황추산·금성산이 둘러싸 좌로 감싸 안으며 안산을 이루고,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보성강이 감정리와 경계를 이루며, 옥녀반의 명산 벽옥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북향 마을이다.
13세기 중엽 밀양박씨가 터를 잡고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특히 박씨 5형제의 효성이 극진하고 형제간 우애가 돈독하며 이웃과 화목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궁중에 알려져 임금이 마을 이름을 돈다(敦多)로 지어 주었다고 전한다. ‘돈다’는 효와 덕을 두텁게 쌓는다는 뜻이다. 돈다제 위 서당골과 옹기 굽던 점 터가 있고, 고비들에 절터가 있으며, 이 절터에서 대련리로 가는 소로가 산중턱으로 있고, 서쪽에 주렴을 만든 곳과 같은 지형의 염청에 집터의 흔적이 있어 큰 부락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현재의 돈다로 이거 정착한 것으로 생각된다. 옛날 마을이 융성할 당시에는 돈다부락 부자와 축내부락 부자가 서로 시샘하여 1,000m가량 떨어진 축내부락까지 대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도록 하였다는 말도 전한다.
밀양손씨 목사공 책의 13세손 후권이 대여부락에서 분가하여 살면서 박씨들은 화순 등지로 흩어져 손씨가 자자일촌을 이루었다. 이 마을 근처 산에 오래된 박씨 묘지가 많아 번창했을 때는 많은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물·유적
· 개비들 절터: 돈다 서쪽 황추산 기슭 개비들 임야에 동향으로 자리한 주춧돌·토방돌이 남아있고, 큰 바위에 맷돌 밑에 비스듬하게 깎아져 있는 등의 흔적으로 보아 절터로 보이는데, 생성 내력·존속 기간을 알 수는 없으나 불교 중흥의 고려 때부터 조선조의 어느 때까지 존속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 절터에서 소로가 산중턱을 따라 대련리로 길이 연결되어 있다. · 돈다제: 1943년에 축조되었으며 몽리면적은 15ha이다. · 매봉산: 새 잡는 매와 봉 형국의 산이라 하여 부르는 산 이름. 지형이 황추(늙은 두루미) 형이라고 1959년 지명개정위원회에서 황추산으로 표기하기로 하였다. 높이는 487.9m이다. · 북사리재: 돈다에서 대련리 무사로 넘어가는 재로 둥그스름하여 북과 같은 형상의 재라 하여 붓사리재로 부르는데 준마격고(말을 달리면서 북을 친다)의 명혈이 있다는 풍수학설이 전해지고 있다. · 돈다교: 1982년 새마을사업으로 교량을 신축하였고 1999년 연장 110m, 사업비 132천만원으로 착공하여 2000년 준공하였다. · 점터: 돈다 서쪽에 그릇을 굽는 옹기 터가 있었다고 전하며 폐 옹기 파편이 하단부 산기슭에 있다. 일명 점등이라고도 한다. · 서당터: 돈다 서쪽 인재를 양성하는 서당이 있었다고 전하며 그곳에 폐기와조각이 많이 나온다. · 돈다서당: 돈암 이규방씨에 의하여 한학을 가르치던 서당이 약 30년간 1970년대까지 운영되었으나 훈장의 사망으로 폐지되었다.
전설
돈다 주변에는 베 나는 골·베틀바위·치마골·잿등·빗가리드의 지명에 연관된 이야기가 전해온다. 벽옥산 옥녀가 베 나는 골에서 베를 날아 금성산 베들바위에서 베를 짜고 잿둥에서 치수를 재서 치마골에서 치마를 해 입고 빗가리에서 머리 빗고 염청의 주렴을 드리우고 제암산 임금님을 기다린다는 지명과 연관 지은 풍수지리적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English
Donda Village was founded in the 13th century by the Miryang Park clan. It faces north, with Hwachubong (Maebongsan) extending southeast and the Boseong River flowing south along the Gamjeong-ri boundary. King granted the village the name ‘Donda (敦多)’ — meaning ’to cultivate virtue and filial devotion abundantly’ — to honor the renowned filial piety of five Park brothers. The Son clan later became the dominant family after the Park family dispersed to Hwasun and other regions. Notable artifacts include temple ruins at Gaebi-deul, Dondaje reservoir (built 1943, 15ha), and a former private school site.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