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노동남초등학교 동문회지 창간호 2015

Source text preserved in Korean from the 2015 Nodong Namcho Elementary School Alumni Magazine.

배남정, 배남쟁이, 이정(梨亭)

금성산 줄기가 동북으로 4회 기복을 거듭하면서 내려와 좌로 감싸 안고 파생된 다른 한 줄기가 우로 감싸 안으며 안산을 형성한 양지 바른 동남향으로 자리하였으며, 장흥에 거주하던 장수황씨가 임진왜란 시 난을 피해 최초로 들어와 살았으나 대여 손유경의 11세손 중효가 분가하여 이룬 마을이다. 이 마을의 지형이 배꽃과 같아 이화낙지 형국의 명혈지에 정자와 같은 마을이 형성되어 이정(梨亭)으로 부르며, 마을 앞에 배나무 정자가 있는데 스님이 배나무 정자에 바랑을 걸어놓고 가버려 바랑정이로 부르다 바랑정이가 변형되어 배남쟁이로도 부른다고 전한다. 지형이 바랑(배낭)과 같은 형상이라 주민들이 비교적 여유있게 생활하고, 작은 마을에서 집집마다 대학생이 끊이지 않고 문학박사 손광은, 고시출신 손인옥·한명진, 노동면장 손두만·한동근 등 많은 인재가 배출된 마을이다.

유물·유적

· 물방아보: 1910년경 손자섭(7)씨가 주민과 협력하여 돌로 보를 축조하였다. 흐르는 물을 막아야 금호리가 번창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돈다 쪽으로 수문을 내서 물이 돌아가도록 하였다. 이 봇등이 금호리와 감정리 주민의 주요 통행로(노두) 역할을 하였다. 당시 연자방아를 갖고 있던 손자섭씨는 이 봇물을 이용하여 감정리 쪽에 수차를 놓아 물레방아로 정미기·제분기·타면기를 갖추어 감정리·금호리·옥마리·용호리·대련리는 물론 장평 일대에서까지 이용하였다. 이 물방아 보는 물이 맑고 깨끗하여 물고기가 많이 서식하여 봄이면 천렵객이 끊이지 않았고 여름이면 어린이부터 청장년들의 물놀이하는 휴식처였다. 1981년 태풍 에그니스의 피해로 보가 유실되어 방치되었다. · 서당골: 이정 북쪽 마을 뒤에 인재 양성을 위한 서당이 있었다고 전해오는 골짜기.


English

Also called Baenaemjeong and Ijeong (梨亭), this south-facing village was formed when the Geumseongsan ridge descended in four undulations. Originally settled by the Jangsu Hwang clan fleeing the Imjin War, then developed by the 11th descendant of Son Yu-gyeong of Daeyeo Village. The village produced remarkable talent including literary Ph.D. Son Gwang-eun, government exam passers Son In-ok and Han Myeong-jin, and village chiefs Son Du-man and Han Dong-geun — an extraordinary record for such a small community. Notable artifacts include the Mulbanga-bo watermill reservoir built around 1910.

사진

배남쟁이마을 — 인재의 마을 이정(梨亭)

배남쟁이마을 — 인재의 마을 이정(梨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