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노동남초등학교 동문회지 창간호 2015

Source text preserved in Korean from the 2015 Nodong Namcho Elementary School Alumni Magazine and the 1868 Ministry of Rites document.

손경훈영당(孫競訓影堂) 위치: 보성군 노동면 금호리 영구마을(이축·삿고개)

밀양손씨 중시조인 손경훈(孫競訓)의 영정을 모신 건물로 건립연대는 불확실하다. 손경훈은 신라 말의 인물로 신라의 국운이 기울어짐을 깨닫고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군사가 되어 기병 15,000명을 거느리고 왕식렴 등과 함께 후백제를 공격해 나가 신검군을 대파하고 그 공으로 광리군(廣利君)에 봉해졌다. 사후에 삼중대광사도(三重大匡司徒)에 추증되었다.

충효문(忠孝門) 위치: 보성군 노동면 금호리 영구마을

이 정려는 손석윤과 손응록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충효각 안에는 고종 5년(1868년)에 손석윤의 정려를 명하는 예조의 입안과 손응록의 정려를 기록한 편액 2매가 걸려 있다.

손석윤: 본관은 밀양. 19세에 은봉 안방준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손수 약을 달이면서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여묘 3년을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묘 앞에 영모제를 세우고 감나무 10여 그루를 심어 제유로 삼았다. 안방준이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키자 손석윤은 종제 손후원·당질 손수헌·족제 손제·손각 등과 함께 노비 수백 명을 이끌고 창의하여 안방준을 보좌하였다. 1868년(고종 5년)에 유학 민대진 등 전라도 유생들이 조정에 손석윤의 효행을 기리자는 상소를 하자 조정에서는 정려를 내리고 통훈대부사헌부지평을 증직하였다.

손응록: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보성군수 안흥국의 종사관으로 공을 세웠고 뒤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으로 활약하다가 안골포에서 순절하였다. 1881년(고종 18년)에 전라도 유생들과 상언으로 조정에서 그의 충절을 기려 정려를 명하고 자헌대부 호조판서를 증직하였다.

이로재(履露齎) 위치: 보성군 노동면 금호리 654 대여마을

고려말 능주목사를 지낸 손책(孫策)과 그 부인 원주이씨를 향사하기 위해 세운 제각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이다. 건물 정면에는 ‘履露齎(이로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건물 안에는 1898년에 중건할 때 쓴 목사 민영철의 ‘이로재기’와 1948년에 쓴 양회갑의 ‘이로재신건기’, 그리고 후손들이 지은 시액들이 걸려 있다.

손책은 본관은 밀양, 광리군 손경훈의 18세 손으로 고려말에 문과에 급제하고 능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창궐하는 왜구를 막다가 경상도 창원에서 전사하였다. 세종 3년에 부인인 원주이씨가 장자 검경과 셋째아들 계경을 데리고, 상소를 하였다가 유배당한 중자 유경의 유배지인 노동면 금호로 와서 살고부터 그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검경은 나주, 유경은 보성, 계경은 정읍에 세거하여 각파의 파조가 되었다. 부인 이씨가 죽자 손책과 원주이씨를 위한 제각을 세웠다고 하나 세운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 때 재사가 불타버리자 1898년(광무 2년)에 후손들이 중건하였고 그 뒤 재사 근처에 민가가 들어서자 1943년에 신축하여 1946년에 걸쳐 옆으로 재사를 이건하였다.

영모재(永慕齋) 위치: 보성군 노동면 금호리 445-1 대여마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평기와 건물이다. 가선대부 손여흥을 모신 밀양손씨의 제각이다. 건물 정면에 ‘永慕齋(영모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강당 구암재 위치: 보성군 노동면 금호리 영구마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선봉장 손응록, 병자호란 때 차의한 손응호, 극진히 부모님을 모신 효행의 석윤의 충효사상을 후손에게 전승시키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학당으로 1860년 건립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건물이 낡고 허물어져 1987년 국비 500만 원, 후손 모금 1,500만 원으로 보수하여 준공하였다.


English

Son Geung-hun Shrine: Located in Yeonggu Village, Geumhori. Enshrines Son Geung-hun (孫競訓), founding ancestor of the Miryang Son clan, who aided Goryeo’s founding by leading 15,000 cavalry against Later Baekje forces. Posthumously honored with the title of Samjungdaegwangsado.

Chunghyomun Gate: Erected to honor Son Seok-yun (loyal scholar-soldier who assisted Anbang-jun’s righteous army in the Byeongja War) and Son Eung-rok (who died at Ankolpo as a vanguard general under Admiral Yi Sun-sin). In 1868 (King Gojong’s 5th year), the Ministry of Rites issued plaques for both.

Irojai (履露齎): A memorial hall in Daeyeo Village honoring Goryeo Governor Son Chaek and his wife Weonju Yi. The current building was rebuilt in 1898 (Gwangmu 2nd year) after the original was destroyed during the 1894 Donghak Uprising.

Yeongmojai (永慕齋): A memorial hall in Daeyeo Village honoring Gaseonodaebu Son Yeo-heung of the Miryang Son clan.

사진

손경훈영당 · 충효문 · 이로재 · 영모재

손경훈영당 · 충효문 · 이로재 · 영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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